○ 어려운 영어는 알아도 독립운동가 모르는 요즘 현실이 안타까웠죠
- 스마트폰 앱 ‘독립운동가’ 만든 정상규 공군 중위
- ‘투철한 국가관’으로 미국 대학원 포기 후 입대한 해외파 장교
- 국가보훈처·포털사이트 등 뒤져 186명 자료와 업적 직접 정리
- 서거일·행적 확인 안 된 독립운동가 많아… 보훈처 협조 필수적
지난 2013년 12월 3일 경남 진주시 공군교육사령부에서 열린 131기 공군 학사사관후보생 임관식에서 이제 막 소위 계급장을 단 한 장교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베스트셀러 ‘Ryan 정이 말하는 미국 유학의 모든 것’을 써 유명해진 정상규 소위였다. 당시 임관한 장교들 중에는 외국에서 생활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은 5명의 해외파가 있었는데 정 소위는 그중 한 명이었다. 그의 훤칠한 외모와 능숙한 외국어 실력도 관심을 끌었지만, 명문 예일대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귀국해 공군에 입대한 남다른 국가관이 관심의 초점이었다. 어느덧 2년여가 지나 정 소위는 중위 계급장을 달았고, 더욱 진화한 국가관과 애국심으로 주위를 놀라게 하고 있다.
● 일상에서 호국선열 기억하고자 시작
“누구나 애국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앱의 개발은 아주 사소한 곳에서 시작됐습니다. 9월 29일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문득 페이스북에 공유된 유관순 열사의 사진 한 장, 그리고 쓰여 있는 글 ‘9월 28일 유관순 열사 서거’를 본 순간 너무나 죄송했습니다.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닌데…, 그렇다고 다 기억할 수도 없는 게 현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분들의 서거일을 기억할 순 없을까?” 최근 서비스를 시작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독립운동가’를 제작·배포한 정 중위는 이렇게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정 중위는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오늘은 독립운동가 OOO선생이 서거하신 날입니다’라는 알림문자 하나를 받게 된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하루를 더 의미 있고 소중하게 보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정 중위는 “이분들을 기억함으로써 독립운동가와 호국선열들의 희생을 되돌아보는 것은 물론 점차 퇴색하고 사그라지는 국가관과 애국심을 되살리고, 우리가 어떤 역사를 가진 위대한 민족인지를 깨달아 자긍심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새벽까지 이어진 앱 제작 작업
정 중위가 이 앱을 만드는 과정은 쉽지만은 않았다. 앱 개발을 시작할 당시 정 중위는 강원도 고성의 방공관제부대 기지 중대장으로 복무했는데, 훈련 중 왼쪽 무릎 인대가 파열돼 그 후유증으로 매일 퇴근 후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정 중위의 전공은 수학과 경제학이었고, 앱 제작을 전문업체에 의뢰하려면 최소 100만 원 이상이 필요했다. 결국 정 중위는 자신이 직접 만들어보기로 하고 제작에 들어갔다.
국가보훈처에 등록돼 있는 1만 명 이상의 독립유공자 중에서 항일무장투쟁 시기에 활동했고, 정확한 연고와 서거일이 기록돼 있는 인물을 추린 후 네이버 독립운동가 카테고리와 위키피디아를 대조하면서 앱에 탑재할 최종 대상자 186명을 선정했다. 그 후 186명의 사진 자료와 업적을 정리했고 마지막으로 186명의 서거일을 수식화했다. 정 중위는 “매일 재활치료를 받은 후 인터넷 사용이 자유로운 페스트푸드점에 가서 새벽 1시까지 작업했다. 그 과정에서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가 수만 명일 텐데 서거일이 역사에 남아 있는 독립운동가가 고작 186명인 것을 확인하면서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수많은 동료와 지인들이 응원해준 덕에 다시 가슴이 뜨거워졌고 사명감 비슷한 걸 느끼며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는 게 정 중위의 설명이다.
● 매일 아침 6시 울리는 ‘오늘의 열사’
이렇게 만들어진 이 앱을 스마트폰에 내려받으면 독립운동가와 순국선열의 서거일을 오전 6시에 문자로 알려준다. 아침에 눈을 떠 핸드폰을 봤을 때 독립운동가 누구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날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또 이 알림문자를 확인하면 앱이 실행되면서 해당 독립운동가의 약력과 사진 자료가 나온다. 스마트폰을 통해 우리의 위대한 역사 속 인물들을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정 중위는 “지금 시대에 맞는 사회적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수단”이라며 “이 앱을 군 차원에서 응용한다면 지금의 국군을 만든 선배 군인들의 발자취와 역사 또한 앱으로 만들어 배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 중위는 “현재까지는 서거일이나 행적 등이 확인이 안 됐지만 추후 확인되는 독립운동가들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려면 국가보훈처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며 “이 부분은 공군 차원에서 보훈처와 협력해 진행한다면 더 많은 순국선열의 서거일을 기억하고 알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중위는 “어려운 영어단어는 엄청나게 외우면서 독립운동가가 영어로 뭔지 아는 사람은 극소수라는 게 현실”이라며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에게 동시에 전송되는 문자 한 통으로 호국선열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히 정 중위는 “이 앱이 올바른 국가관과 역사관, 민족혼을 불어넣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가슴속에 작은 물결 하나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강조했다.
● 국가안보 위해 일하는 외교관 되고파
정 중위의 국가관과 애국심은 입대 전부터 남달랐다. 그는 오리건대학교에서 동양인 최초로 자연과학협회를 설립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는 등 10년여 동안 성공적으로 미국생활을 해왔다. 특히 예일대 대학원에 합격해 진학이 예정돼 있었고 영주권도 취득할 예정이었지만 이를 모두 포기하고 귀국, 군에 입대했다. 물론 아버지의 건강 악화라는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지만, 미국생활을 하며 늘 가슴 한편에 담아두고 있었던 애국심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현재 공군10전투비행단 보급대대 장비관리반장으로 복무하고 있는 정 중위는 “앞으로도 맡은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내가 가진 재능을 공군, 나아가 국가를 위해 사용하면서 복무하고 싶다”며 “전역 후에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배운 문화의 다양성과 다양한 언어 구사 능력, 장교로서 쌓은 리더십과 중간관리자의 경험 등을 활용해 국가안보와 관련된 분야에서 일하는 대한민국 외교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 출처 : 국방일보('15. 1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