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에서 항공력은 정찰 및 제한적인 지상군지원을 위한 전력으로 활용되었으며, 전쟁에서 결정적인 전투력으로 운용되지 못하였다. 당시의 전쟁은 상대국의 지상 및 해상전력 격파에 중점을 두고 있었으며, 장기간에 걸친 소모전쟁으로 돌입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따라서 운반능력과 파괴력, 정확성에 한계가 있었던 항공전력은 지상군의 보조수단으로써 활용되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장식품 정도의 군사력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항공기술이 발달하게 되자 3차원 전력의 중요성이 중요시되기 시작했고, 지상과 해상에 대한 항공력의 지원 가능성이 부각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두헤, 트렌챠드, 미첼 등 많은 항공전략 사상가들은 장차전에서 항공력이 더욱 중요할 것임을 강조하여 공군의 독립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그들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앞으로 어떠한 전쟁에 있어서도 하늘에서 우위를 점한다는 것이 승리를 위한 절대적인 선결조건임을 새로운 이론들을 통해 주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항공전략가들이 제시하여왔던 항공력의 위력이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전쟁을 수행하면서 항공력은 필수적 인 요소임을 검증받았으며, 때로는 주요 전쟁목표를 완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항공력이 주도적 역할을 보다 많이 수행하게 되자 육군이나 해군은 항공부대와 밀접한 협조 없이는 승리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탱크가 사용됨으로써 지상전 전술에 획기적인 변화가 발생하였고, 이것은 항공기의 역할 증대와도 이어졌다.
탱크는 신속하게 기동하면서 보병부대에 대한 방호와 공격을 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전과 달리 진지전과 지구전을 탈피할 수 있게 하였고, 지상전에서 필수적인 무기가 되었다. 그러자 적의 탱크를 공격하기 위해 항공기에 대전차포와 로켓포탄을 장착하게 되었고 전투폭격기는 더욱 중요한 수단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항공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항공기의 임무는 더욱 다양화되었다. 적재량과 항속거리가 증가된 항공기는 공중보급과 부대공수를 통해 적 지상군의 저항이나 지형적 불리를 극복할 수 있게 하였다. 항공기를 이용하는 낙하산부대는 특수부대로써의 중요성이 인정되어 전술공군의 일부로 활용되었고, 이후 독립병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능력들은 지상 작전수행에 있어서 종전의 작전 개념을 수정할 만큼 큰 영향을 주게 된다.
또한 레이더의 발명으로 항공전략과 전술은 지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영국이 독일의 영국본토에 대한 폭격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레이더에 의한 탐색과 방공전투지휘를 기술적으로 조화시킨 결과였다.
이후 각종 항공탑재 레이더들이 사용되고 정밀도가 점차 향상되자 전략폭격부대의 위력도 더욱 증가하게 되었다.
항공기 보조탱크의 발명과 장착도 전술적 측면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전투엄호기들은 그것을 통하여 항속거리를 증대시킬 수 있었다. 그 외에도 항공기와 폭탄의 성능 향상은 공중전과 지상목표에 대한 선택적 파괴가 가능하여 전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육상, 해상, 공중의 모든 전장에서 승리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공중우세의 획득이 필수적인 요건이 되었다. 이러한 공중우세를 위해 각국들이 항공전력을 어떻게 양성하고 운용하였는가에 따라 그 전쟁의 결과가 좌우될 정도였다.
영국 공군은 폭격기집단과 더불어 본토방어에 필요한 전투기집단과 연안비행집단을 우선시하였으며, 미국도 영국과 동일한 방침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연합국 공군은 독일에 대한 전략폭격을 추진하였다.
독일의 군수생산시설과 교통망을 파괴하여 전쟁수행능력을 파괴하고 상대적인 공중우세를 획득 함으로써, 전의를 말살하여 무조건 항복을 유도하였다. 이 시기의 연합국 지도자들은 전략폭격의 의의와 목적을 잘 이해하였고, 전략폭격을 위한 꾸준한 준비로 그 목적달성에 필요한 폭격기를 생산하였으며, 다른 병과와도 조화를 이뤄 균형 있는 공군 육성 및 전반적인 항공지휘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이러한 결과가 독일에 대한 연합국의 전략폭격을 가능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독일은 항공기를 지상군 직접지원 임무에 집중하였고, 독일 공군은 독립적인 지휘체계를 갖고 있지도 못하였다. 따라서 독일 공군은 지상군 위주의 전술적인 전격전에 기초하여 단기결전을 목표로 항공력을 운용하였다. 따라서 장기적 안목에 입각한 전략공군의 운용에 대한 명확한 계획이 없었고, 독자적인 전략항공작전을 실시하기 위해 부대를 편성하거나 장비를 갖출 수도 없었다.
더구나 전쟁말기로 접어들면서 히틀러의 독단적인 판단에 의한 빈번한 목표변경과 지상군 지원에 편향된 항공력 운용 방식은 독일 공군의 패배를 더욱 촉진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공중우세와 효율적인 전략폭격을 중시한 항공력 운용방식은 태평양전쟁에서도 적용되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전후 미 해군의 헬세이 제독은 “지난 전쟁에서 얻은 가장 명쾌한 교훈은, 현대전에서는 어디를 가고자 하든지 제공권을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강조하기도 하였다.
반면에 일본은 항공력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지 못하고 소련과의 지상전을 중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항공력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항공전략을 수립하지 못하였다. 결국 일본은 항공력의 운용에 실패함으로써 전쟁패배를 더욱 앞당기게 되었다.
이렇게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면서 항공력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각국은 공중우세 없이는 지상전과 해상전에서의 승리는 있을 수 없으며, 나아가 전쟁의 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여 독립된 공군들이 연달아 창설되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2차 세계대전은 공중우세를 위한 항공력의 건설과 항공전략을 이해하는 전문가에 의한 항공력 운용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일깨워 주었던 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