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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전사

보스니아 평화강제작전 (1995.8.30∼9.14)

1.보스니아의 내전 발생

1980년 5월, 수세기 동안 다양한 민족들을 연방으로 통합하여 강력하게 통치해왔던 티토가 사망하자 유고슬라비아에는 지역 패권주의가 부활하였다. 1991년에는 내전을 거쳐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 4개 공화국이 독립하였고, 남아있던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는 1992년 4월 축소된 영토로 신 유고연방을 구성하였다.

이에 대해 미국과 유럽은 보스니아의 독립을 조기에 승인함으로써 전쟁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하였으나, 연방군은 세르비아 민병대를 적극 지원하게 됨으로서 크로아티아지역내의 세르비아 민병대(이후 ‘세르비아군’으로 호칭)가 보스니아로 진입하여 내전이 확산되었다.
보스니아 분쟁에서 NATO와 UN은 다소 안정적인 현상유지를 위한 억제적인 항공력 사용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정치가들은 이 위기에 대한 공정한 해결안을 모색했다. 따라서 Deliberate Force 작전 이전에는 항공력 사용은 산발적이었으며, NATO는 'Deny Flight'라는 비행금지 구역을 발칸 상공에 설정하였다.

한편, 1994년 12월에는 카터 전 미대통령이 보스니아 분쟁당사자들 사이에 4개월간의 휴전을 중재했으나, 1995년 5월 1일 크로아티아의 주요 공세로 분쟁이 재차 격화되고 세르비아군은 사라예보 근처의 UN경비 무기고의 중화기를 강탈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NATO는 이틀간 공중공격을 실시하였으며, 세르비아는 다수의 UN보호군을 인질로 잡아 잠재적인 NATO군 표적에 묶어두었다. TV 뉴스를 통해 이러한 상황이 전해지자 전세계에 걸쳐 많은 격분을 불러일으켰으며, 서방 지도자들을 자극하였다. 이러한 급박한 사건들 때문에 UN과 NATO군은 주어진 기본임무를 수행하면서 지상 부대도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대응’으로 전략을 수정하였다.

2.보스니아 항공작전 계획

NATO와 UN은 “Dead Eye 작전”과 “Deliberate Force 작전”이라는 두 가지 작전계획을 수립하였다. Dead Eye 작전은 NATO 전투기들이 Deliberate Force 작전계획에서 지정된 표적에 안전하게 폭격할 수 있도록 세르비아의 통합방공체계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즉, 적의 눈을 멀게 하고 귀와 신경을 파괴하기 위한 계획으로 주요 표적들은 핵심 방공통신 시설, 조기경보 레이더 사이트, 알려진 지대공 유도탄 사이트와 지원시설, 방공 지휘통제 시설 등이었다.

Deliberate Force 작전은 세르비아군의 공세적 군사능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공중공격 계획으로 주요 표적으로는 실전 배치된 전력/중화기, 지휘통제시설, 필수 군사지원시설, 지원 및 기반 시설/병참선 등이 계획되었다. 나중에 NATO 항공작전 기획자들은 개별 계획을 Deliberate Force 작전이라는 이름아래 포괄적인 공습계획으로 통합했으며, NATO 항공작전은 Operation Dead Eye와 Operation Deliberate Force를 동시에 실시하였다.

세르비아군이 1995년 8월 28일 아침 사라예보 시장을 박격포로 공격하여 38명의 민간인 사망자와 85명의 부상자를 발생시키자 NATO는 본격적인 항공작전을 실행하게 되었다. 1995년 8월 30일 밤 02:10, 60대의 NATO 항공기 출격으로 Operation Deliberate Force를 시작하였다. 통합방공체계를 제일 먼저 폭격하였으며, 처음 48시간 동안 NATO는 사전 승인된 48개의 표적군을 공격하였다. 8월 30일부터 9월 14일까지의 총 294대의 NATO 항공기가 참가하여 총 3,515회의 출격을 하였으나, 불량한 기상으로 인해 공습이 이루어진 것은 11일에 불과하였다.

근접항공지원, 전장차단, 대공제압, 정찰, 탐색 및 구조를 위한 임무를 위해 총 2,470회의 소티가 투입되었고, 공중 조기경보, 공중 전장 지휘통제 및 통신, 전자정보/전자지원책, 공중 재급유 등을 위해 지원전력이 1,045회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작전의 전 기간 동안 정찰, 적 방공망에 대한 대공제압, 근접항공 지원이 실시되었고 공중전투초계, 공중재급유, 공중조기경보, 공중 전장지휘통제 및 통신, 전자정보/전자지원책 등의 임무는 24시간 수행되었다. 투하된 폭탄 총 1,026발 중에 708발(69%)은 정밀폭탄이고 31%에 해당하는 318발만이 비정밀 폭탄이었다. 비정밀 무장의 사용도 F-16에 탑재된 컴퓨터 체계 덕분에 상당히 정확했다.

2주 후인 9월 14일 UN요구-안전지역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고 사라예보 주변 20km의 배타구역 밖으로 중화기를 철수시키며, 세르비아 저격수와 포 사격으로 끊어졌던 사라예보 공항과 각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의 개통-에 세르비아군이 동의할 때까지 NATO의 작전은 지속되었다.

정밀폭격의 효과 입증

Deliberate Force를 통해 NATO는 군사적 수단 중에서 항공력이 가장 효과적인 강압수단임을 보여주었다. 세르비아군은 NATO의 요구대로 사라예보에 대한 포위를 풀고 보스니아 분쟁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NATO는 부수적 피해가 야기되는 지상군의 투입을 배제하고 고도의 정밀성과 파괴력을 갖는 항공력만을 사용하여 적을 협상의 테이블로 나오도록 강요하였다. 전후 "Deliberate Force 작전은 분쟁 당사자들을 Dayton의 협상 테이블로 이끄는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단계였다"라는 William Perry 국방장관의 평가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적 의지를 관철하는데 결정적이었다.

NATO는 이 작전을 수행하면서 항공력 교리인 중앙집권적 직접통제를 적절하게 수행하였다. NATO와 UN은 위임명령을 통해 표적집단을 제한하여 설정하였고, 연합공군사령관은 부수적 피해, 사실상 대학살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것을 특정 목표로 제한했다. 그러한 지침에 따라, 실제 교량을 파괴할 경우 교통량이 없는 야간을 선택하여 공격하였으며, 탄약고를 공격하면서도 인근 관리 건물을 파괴하지 않도록 공격의 방향과 순서를 적용하였다. 이러한 형태의 통제에 의해 공세적 항공력이 적절히 운용되어 강압적 효과를 최대로 발휘할 수 있었다.

전자장비에 의해 수행된 하이테크전도 이 작전이 보여준 특징 중의 하나이다. NATO의 항공기들은 최첨단이었던 세르비아군의 방공망이 작동하는 한 표적에 접근하거나 공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지대공 유도탄의 레이더 전파를 추적하여 공격할 수 있는 AGM-88 HARM으로 무장하여 대응하였다. NATO의 항공기들이 세르비아의 추적 레이더를 향해 HARM을 발사하면 세르비아군은 HARM의 유도체계를 혼란시키기 위하여 수 초 이내에 레이더의 전원 스위치를 꺼야만 했다. 세르비아군은 HARM 공격을 회피할 수 있었지만 침투하는 NATO의 공격기들을 차단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작전에서는 압도적으로 많은 정밀무장을 사용되었고 부수적 피해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보스니아는 산악지형과 무성한 숲으로 이루어졌으며 작전기간 중 나쁜 날씨가 지속되었다. 미 공군의 참모총장이었던 Merrill McPeak 대장도 걸프전과 비교하여 보스니아에서 항공력이 직면한 어려움을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NATO의 항공기들은 작전환경을 극복하고 현대적 항공력의 위력을 과시했다.

조종사들은 구름이 짙게 깔린 산악지역 상공을 시속 600마일로 비행했지만 정밀무기를 사용함에 따라 숲 아래에 위치한 표적을 정확히 찾아 공격하였다. NATO군은 탄약의 70%를 정밀무기로 사용하였다. 미군의 경우에는 걸프전에서 단지 2%에 불과했던 정밀유도 무기가 이 작전에서 90%로 증가했다. 또한 NATO의 항공작전은 민간 피해가 거의 발생하지 않은 깨끗한 전쟁(Clean War)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민간인의 생명과 재산의 위험을 확실하게 제거하기 위해 표적을 재점검하여 선택했다. 또한 이는 대중에게 발생되는 부수적 피해에 대한 정치적 민감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폭격피해평가를 위한 정찰사진에서도 과거와 다른 정밀무기의 효과가 발견된다. 이전의 작전에서는 목표주변에 생긴 다수의 폭파구를 분석하여 목표의 파괴 여부와 부수적 피해를 판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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